오늘은 포괄임금제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포괄包括’은 특정한 대상을 어떤 범위 안으로 한꺼번에 끌어온다는 뜻이다. 그래서 포괄임금제도 ‘근로시간’을 ‘정해진 임금’ 안으로 끌어 모은다. 야근을 10시간을 해도, 20시간을 해도 받는 돈이 똑같은 이상한 일은 그래서 가능했다. 어차피 연장근로는 정해져 있으니 일하는 사람은 일만 하라는 임금 시스템이었다. 복잡한 계산이 필요 없는 포괄임금제는 그래서 기업에 인기가 있었다. 연장 근로가 잦은 국내 문화에서는 더욱 그랬다. 하지만 이제 상황이 바뀌었다. 주 52시간제가 시작됐기 때문이다. 더스쿠프(The SCOOP)가 포괄임금제를 뺀 월급명세표를 공개한다. 내 월급이 어떻게 변하는지 쉽게 볼 수 있는 자료다.
“월 임금의 구성은 실제 근로시간에 따른 법정 제수당諸手當을 모두 포함한 포괄임금제로 하며….” 기업 10곳 중 4곳의 근로계약서에는 이런 문장이 들어간다.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일하는 사회 초년생들이 늦은 저녁 퇴근을 했을 때 자꾸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포괄임금제라 야근을 해도 이미 수당이 포함됐다고 말한다. 제대로 일한 만큼 받는 걸까.
결과부터 말하자면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계약서에 포함된 내용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포괄임금제는 ‘일정한 임금’ 안에 모든 노동시간을 포함하는 임금지급 방식을 말한다. 원래 정해져 있던 퇴근시간인 ‘오후 6시’를 넘겨서 일하더라도 포괄임금제로 근로계약을 했다면 추가수당을 별도로 받지 않는다. 임금에 수당이 포함돼 있어서다.
그래서 포괄임금제 계약서에는 원칙적으로 “월 통상 연장근로 15시간, 휴일근로 12시간을 포함하는 것으로 한다”와 같은 명확한 표현이 적시돼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포괄임금제 계약은 ‘공짜노동’이라는 꼬리표를 떼지 못한다. 근로계약서에도 연장근로를 얼마나 하는 것인지 명시하는 곳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포괄임금제 근로계약을 체결한 100인 이상 기업의 비중은 41.3%다(사무직 근로시간 실태와 포괄임금제 개선방안·2016년 한국노동연구원). 매출이 높은 대기업이라면 다르지 않을까. 2017년 한국경제연구원이 매출 규모 600위 안에 드는 기업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기업의 57.9%가 포괄임금제를 시행하고 있었다. 오히려 비중이 더 높았다.
물론 포괄임금제가 필요한 곳도 있다. 고용노동부도 2017년 ‘포괄임금제 사업장 지도지침’에서 ‘근로시간 산정이 어렵고 포괄임금제를 노사가 합의했을 경우’라는 단서를 달았다.
한국경제연구원의 조사에 응했던 기업들도 “근로시간 산정이 어렵다”는 것을 포괄임금제 적용의 첫번째 이유로 꼽았다. 직원들의 근로시간을 제대로 알 수 없어 포괄임금제가 필요하다는 거다. 뒤집어 말하면, 근로시간이 명확한 직업은 포괄임금제 대상이 아니라는 뜻이 된다.
그렇다면 사무실에 앉아서 일하지 않는 현장, 외근 위주의 노동자들만 포괄임금제를 적용하는 걸까. 그렇지도 않다. 앞서 한국경제연구원이 진행한 조사에 따르면 대기업의 일반사무직 포괄임금제 적용률은 94%였다. 출퇴근 시간이 명확한 사무직까지도 포괄임금제의 대상이 됐다는 얘기다.
“수당은 이미 줬다, 얼마를 더 일하든”
그래도 변화는 있었다. 분기점은 주 52시간제도 도입이었다. 정부가 근로시간 기준을 세우니 ‘근로시간 산정이 어렵다’는 변명이 더 통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기업이 앞다퉈 ‘PC OFF 제도’ 등을 도입했기 때문이었다. 컴퓨터가 켜지고 꺼지는 시간이 곧 근로시간이 됐다. 표면적으로는 더 일하려 해도 일할 수 없는 환경이 만들어진 셈이었다. 반대로 기업에는 포괄임금제를 포기해야할 이유가 생겼다.
그렇다면 포괄임금제가 사라졌을 때는 어떤 변화가 생길까. A건설사의 월급 명세서를 사례로 들여다봤다.[※참고: 건설회사의 직군은 크게 사무직과 현장직으로 나뉜다. 사무직의 경우 건설업이 아닌 회사의 일반 사무직과 비슷하게 구성된 임금을 받는다.]
일반적으로 건설사 본사에서 일하는 사무직의 월급명세표는 주 40시간 근로를 기준으로 삼은 기본급(1), 포괄임금제에 해당하는 연장근로수당(2)으로 구성돼 있다. 여기에 장기근속수당·연차수당·직급수당 등 근로시간과 관계없는 제수당(3), 비정기적으로 지급되는 상여금(4)이 포함된다.
포괄임금제가 폐지되면 월급 명세서는 더욱 간단해진다. 사무직의 경우 기본급(1)의 비중이 크게 늘어난다. 연장근로수당(2)의 비중은 전체 월 급여의 7%에서 3%대 수준으로 줄어든다. 제수당(3)과 상여금(4)은 그대로다.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직군의 경우엔 사무직이 받는 기본급(1)과 연장근로수당(2), 제수당(3), 상여금(4)을 포함해 별도로 현장수당(5)을 받는다. 공사 현장의 경우 어쩔 수 없이 휴일에도 일하는 일이 발생한다. 이런 경우에는 시간당 책정되는 휴일 수당(6-1)을 받거나 고정된 당직비(6-2)를 받는다.
포괄임금제를 폐지하는 경우 현장직의 월급 명세서도 사무직과 비슷한 형태로 변한다. 기본급(1)에 기존 연장근로수당(2)의 일부가 들어가고 새로운 월급 명세서의 연장근로수당(2)에는 기존 연장근로수당의 30%만이 남는다. 제수당(3), 상여금(4), 현장수당(5)은 그대로이고 휴일 수당(6-1)의 경우 기본급이 커지기에 약간 늘어날 수 있다.
포괄임금제의 모순은 ‘연장근로수당(2)’에서 발생한다. 대부분 회사는 연장근로수당(2)을 ▲한달에 52시간을 추가 근로한다고 가정하거나 ▲매주 12시간씩, 한달 48시간씩 추가 근로하는 것으로 가정하고 산정한다.
포괄임금제는 그동안 연장근로수당을 제대로 주지 않는 ’꼼수’로 사용됐다.
건설현장 노동자의 예를 들어보자. 실제로 52시간만 추가 근로했다면 상관이 없지만 여태까지 그 이상으로 추가 근로한 만큼의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민주노총 건설기업노조의 자체 통계에 따르면 건설업 현장직은 주 52시간을 일하고도 추가로 매주 8.5시간을 더 근로했다. 포괄임금제를 적용하는 현장이라면 8.5시간을 더 일한 만큼의 임금은 받을 수 없다. 이미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포괄임금제를 폐지한 건설사들은 ‘연장근로수당’을 손봤다. 2018년 7월 주 52시간제가 시작되면서 포괄임금제를 폐지한 삼부토건이 대표적인 예다. 삼부토건은 주 52시간을 기준으로 기존 기본급(1)과 연장근로수당(2)을 통합해 기본급화(Ⅰ)했다. 현장직의 경우에는 주 52시간을 넘겨 일하는 경우 추가로 일한 만큼 임금을 받을 수 있도록 ‘진짜 근로시간’을 기준으로 한 연장근로수당을 적용했다.
이렇게 되면 기업은 통상임금의 부담이 늘어난다. 통상임금은 기본급을 포함해 노동자가 정기적으로 임금으로 받는 모든 금액이다. 연장근로수당의 기준이기도 하다. 삼부토건은 가파르게 늘어나는 임금 부담을 막기 위해 총 9시간의 근로시간 중 8시간30분은 기본급으로 하고 나머지 30분을 연장근로수당을 적용하는 방식으로 결론을 내렸다. 통상임금의 증가 속도를 늦춘 셈이다. 회사와 노동자가 모두 한 발짝씩 물러났다.
삼부토건 관계자는 “어떤 사람은 적게 일하고도 포괄임금제로 일한 것보다 더 받아가기도 했고, 어떤 사람은 더 일하고도 그만큼 받지 못했다”면서 “기본급을 높이지 않기 위해 만들었던 여러 수당을 정리하고 실근로시간으로 수당을 더하는 방식을 택했다”고 설명했다.
수당의 기본급화
삼부토건의 예에서 보듯 핵심은 ‘수당의 기본급화’다. 기본급을 낮추고 수당으로 연봉을 채워 넣는 일이 빈번하다 보니 일부 회사에서는 연봉 4000만원 수준을 받는 신입사원이 기본급만 따지면 최저임금을 받지 못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결과적으로는 임금을 다 주고도 이 회사는 고용노동부의 시정 지침을 받아야 했다. 기본급을 높였으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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